2018년 1월 2일 방문한 청와대 관람 후기 입니다.

6개월 전에 청와대 관람 신청 페이지에서 예약이 오픈되는데요.

관람 운영을 공휴일 제외한 매주 화~금요일,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만 하기때문에 방문 예약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ㅎㅎ

자세한 내용은 아래 청와대 관람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www1.president.go.kr/tours/about

신청을 하고, 보통 경복궁 주차장에서 청와대행 버스를 타고 출발을 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막힐까봐 조금 일찍 도착했어요.

화요일은 경복궁이 휴관일 인데, 휴관이라 그런지 사람이 더욱 안 보이네요.

청와대 인원 점검하고 버스를 타는 곳 입니다.

관람 대기소가 비좁아 일찍 가지 않으면 안에 들어가서 앉을수가 없습니다.

어른은 신분확인을 하고 입장이 가능하니, 꼭 신분증 가지고 가세요.

관람 순서는 만남의 장소에서 버스를 타고 청와대 홍보관으로 이동 합니다.

버스에는 인솔자로 청와대 경호처 경호관이 한분씩 탑승하시는데,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아이들을 위해서 휠체어나 유모차를 대여해 주고 있으니, 필요하면 이야기 해달라고 합니다.

사진 촬영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할 수 있고, 동영상 촬영은 안된다고 하시면서 주의사항을 몇가지 알려주시네요.

청와대 홍보관 입장시 전신 검색을 하고 입장합니다.

여기서 휠체어나 유모차를 대여해 줍니다.

홍보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동영상을 틀어 주고 있습니다.

관람후에 녹지원으로 이동하는데, 이 때 청와대 방문 기념품을 줍니다.

어린이들은 목걸이 카드 지갑, 어른들은 컵 입니다.

아래가 녹지원입니다.

여기에서 첫번째 사진 촬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상춘제 입니다.

구 본관터 입니다.

여기서도 사진 촬영을 할 수가 있어요.

천하제일복지라고 적혀있는 비석은 1/4 크기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 촬영후 청와대 본관쪽으로 이동 합니다.

운좋게 오늘은 강경화 외무 장관도 볼 수 있었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 실장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청와대 본관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청와대 사진 잘 나왔네요. ㅋㅋ

이후 영빈관쪽으로 이동 했습니다.

영빈관은 오늘 행사가 있는지, 별도의 설명을 듣지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ㅎㅎ

이후 칠궁을 보실 분들은 칠궁 관람을 할 수가 있습니다.

칠궁은 조선의 왕을 낳았던 후궁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옛날에는 일반에 개방되었던 곳이였으나,

김신조 사건 이후에 청와대 경호조치의 일환으로 일반에 개방을 안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청와대 관람 인원에 한하여 볼 수 있도록 개방된 곳 입니다.

재실
이 곳은 육상궁을 수호하는 관원이 거처하며 제사를 준비하던 재실이다. 제사 때는 왕이 이 곳에 나와서 대기하기도 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송죽재와 풍월헌이다. 정면 8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으며, 송죽재와 풍월헌이라는 현판 2개가 동서로 걸려 있다. 숭죽재와 풍월헌 뒤편으로는 안채 격인 삼락당이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지어져 있다. 이들 건물은 조선민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건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육상궁 연호궁 경역
이 곳에는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육상궁과 정빈 이씨의 신주를 모신 연호궁이 있다. 육상궁은 영조 1년(1725)에 건립되었으며 고종 19년(1882)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20년(1883)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호궁은 고종7년(1870)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와 육상궁과 한 집에 같이 모셨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것이 육상궁과 연호궁 건물이다. 이 건물 안에 숙빈 최씨의 신주와 정빈 이씨의 신주가 따로 모셔져 있다. 대문에서 육상궁과 연호궁 건물에 이르는 길에는 어도가 깔여 있고 그 중간에 배각이 서 있으며, 어도의 양옆으로는 이안청이 한 채씩 서 있다. 배각은 육상궁 경역의 담장 안에 또 하나의 폐쇄된 외부 공간을 만들어 육상궁과 연호궁 건물이 좀 더 부각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Yuksangung / Yeonhogung Grounds
Located here are Yuksanggung, the shrine for the spirit tablet of the royal concubine Sukbin Choe, and Yeonhogung, the shrine for the spirit tablet of the royal concubine Jeongbin Yi, Yuksanggung was built in 1725, but was lost in a fire in 1882. It was rebuilt in 1883 and stands to this day. Yeonhogung was moved into Yuksanggung in 1870. The building, Visible upon entering the front gate, is Yuksanggung and Yeonugung. The spirit tablets of Sukbin Choe and Jeongbin Yi are enshrined separately in this building. The road leading from the main gate is paved with bricks, and in the middle stands a large gate-like entranceway(baegak) consisting of two rows of four pillars and a roof, set atop a foundation platform with steps leading up to it. To either side of the path are erected two buildings where utensils and equipment used during sacrificial rites are stored. The function of the baegak is to make Yuksanggung and Yeonhogung stand out a little more by creating yet another division of the space within the walls of the Yuksanggung grounds.

냉천정
냉천정은 영조가 어머니의 제삿날에 나와서 몸을 깨끗이하고 정성을 가다듬어 제사를 준비하던 집으로 육상궁 연호궁 경역과 대빈궁 경우궁 경역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1725년에 육상궁과 더불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두 칸은 온돌방, 동편 한 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다. 냉천정의 뒤편에는 냉천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제사 때 이 곳의 물을 사용하였다. 냉천의 벽면에는 1727년에 영조가 쓴 냉천과 냉천정에 대한 오언시가 새겨져 있다. 냉천정의 앞마당에는 '자연'이라고 새겨진 직사각형 모양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냉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모아 만든 것이다.

냉천(冷泉)비문(碑文)
御墨雲翰(어묵운한) 임금님의 글월을 새기다
昔年靈隱中(석년영은중) 냉천이 옛날에는 영은에 있었고
今日此亭內(금일차정내) 오늘은 이곳 정자에 있구나
雙手弄淸漪(쌍수농청의) 두손으로 맑은 물을 어루만지니
冷泉自可愛(냉천자가애) 냉천이 가히 좋구나
旹强圉協洽月上浣也(시강어협흡병월상완야) 정미년(1727, 영조3년) 3월 10일

대빈궁 경우궁 경역
이 곳에는 희빈 장씨의 신주를 모신 대빈궁, 영빈 이씨의 신주를 모신 선희궁, 인빈 김씨의 신주를 모신 저경궁, 수빈 박씨의 신주를 모신 경우궁, 순헌귀비 엄씨의 신주를 모신 덕안궁이 있다. 대빈궁, 선희궁, 저경궁, 경우궁은 1908년에, 덕안궁은 1929년에 이 곳으로 옮겨졌다.
덕안궁 경역에는 모두 다섯 채의 건물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덕안궁이다. 대문에서 덕안궁으로 이르는 길에는 어도가 깔려있고 어도의 왼쪽 편에 이안청이 한 채 서 있다. 덕안궁 왼편을 돌아 어도를 따라가면 뒤쪽으로 새 체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데 왼쪽에서 부터 차례로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과 경우궁이다. 선희궁과 경우궁은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고 영빈 이씨의 신주와 수빈 박씨의 신주가 따로 모셔져 있다.

Daebingung / Gyeongugung Grounds
Located here are Daebingung, the shrine for the spirit tablet of the royal concubin Huibin Jang, Seonhuigung, the shrine for the spirit tablet of the royal concubine Yeongbin Yi, Jeogyeonggung, the shrine for the spirit tablet of the royal concubine Inbin Kim, Gyungugung, the shrine for the spirit tablet of the royal concubine Subin Bak, and Deogangung, the shrine for the spirit tablet of the royal concubine Sunheongwibi Eom. Daebingung, Seonhuigung, Jeongyeonggyung, and Gyeongugung were moved here in 1908, and Deogangung was moved here in 1929.
There are a total of five buildings within the Deogangung grounds. The building visible upon entering the front gate is Deogangung. The road leading from the main gate is Deogangung is paved with bricks, and to the left is a building where utensils and equipment used during sacrificial rites are stored. Following the brick path to the left of Deogangung and aroud the back, three buildings appear side by side. These are, from left to right, Jeogyeonggung, Daebingung, and Seonhuigung and Gyeongugung. Seonhuigung and Gyeongugung are now one building, and the spirit tablets of Yeongbin Yi and Subin Bak are enshrined separately inside.

덕안궁(德安宮)
덕안궁은 고종의 후궁으로서 영왕을 낳은 순헌 귀비 엄씨의 신주를 모신 궁이다. 광무 원년(1897)에 엄비가 아들을 낳으면서 경운궁 안에 거처할 궁을 세워 그 궁을 경선궁이라 불렀고, 엄귀비가 세상을 떠나자 덕안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3년에는 새로 궁을 짓고 엄귀비의 신주를 모셨다. 1929년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저경궁(儲慶宮)
저경궁은 선조의 후궁이며 죽은 후 왕의 칭호를 받은 원종을 낳은 인빈 김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서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왕의 칭호를 받았다. 인빈이 세상을 떠난 후 원종이 살던 송현궁에 신위를 모시고 저경궁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저경궁은 고종 7년(1870)에 계동에 있는 경우궁 안으로 옮겨졌고, 1908년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빈궁(大嬪宮)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으로서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숙종 27년(1701)에 희빈이 사망한 후 신위를 정동에 있는 집에 모셨다가 경종 2년(1722)에 희빈에게 옥산부대빈의 칭호를 내리면서 사당을 현재의 교동인 경행방에 세웠다. 대빈궁은 고종 7년(1870)에 육상궁으로 옮겨졌으나 얼마 후 경행방으로 다시 돌아갔고,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희궁(宣禧宮)
선희궁은 영조의 후궁이며 죽은 후 왕의 칭호를 받은 장조를 낳은 영빈 이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장조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세자에 정해졌으나 영조의 미움을 받아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영빈이 영조 40년(1764)에 세상을 떠나자 백운동에 묘를 세워 의열묘라 이름 지었다. 정조 12년(1788)에 묘의 이름을 선희궁으로 바꾸었고, 고종 7년(1870)에 육상궁에 옮겨져 있다가 백운동으로 다시 돌아갔다.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우궁(景祐宮)
경우궁은 정조의 후궁으로서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수빈은 순조 20년(1820)에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신주를 창경궁안의 건물에 모시고 현사궁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현재의 종로구 계동인 양덕방에 따로 묘를 세우고 이름을 경우궁으로 지어 신주를 모셨다. 이후 이 궁은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현재의 옥인동인 인왕동으로 옮겨졌다가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칠궁까지 잘 관람하고 집으로 잘 돌아왔습니다.

청와대 홍보관에 10시 10분정도에 입장했고, 영빈관까지 보고 11시 25분정도에 청와대를 빠져 나왔습니다.

총 1시간 15분 가량 청와대 관람을 진행했습니다.

홍보관에서 나와서 영빈관까지가 외부에서 걷는 시간이 약 35분 가량 됩니다.

겨울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추운 날씨 감안해서 방한용품 단단히 챙겨가시면 좋을거 같아요.

칠궁은 11시 30분 부터 11시 50분까지 약 20분 가량 관람했습니다.

아래는 청와대에서 받은 방문 기념품 입니다.

어른들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적혀있는 멋진 컵을 줍니다.

에릭스도자기라는 곳에서 만들었네요. ㅎㅎ

아이들은 청와대 로고가 박혀있는 카드지갑을 줍니다.

컵도 좋고, 카드 지갑도 좋습니다.

이니시계는 아니지만, 감사히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ㅋㅋ

카테고리: 서울(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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